우리 음악의 멋과 향기를 느끼고 몸과 마음에 여유를 지닙니다.
조선조 초기의 문신으로 천재적인 음악가, 음악이론가 그리고 음악사상 태두요 거성임은 그의 빛나는 업적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 8월 20일에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초명은 연, 자는 탄부이며 호는 난계, 시호는 문헌공으로 1767년 영조 3년 7월에 내려졌고 복야공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어려서는 엄한 정훈과 돈돈한 지도를 받으면서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1405년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세자시강원 문학을 지냈다.
예문관대제학, 이조판서를 역임한 후 관습도감 제조로 있는 동안에 많은 연구와 업적을 쌓았으니 작곡, 연주 뿐만 아니라 악기의 제작, 음악 이론의 연구와 조율 그리고 궁정음악의 정립과 혁신 등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박연은 이렇듯 뛰어난 음악적 업적으로 인해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난계가 음악에서 이 같은 대성을 이룩하게 된 데에는..
위로 세종대왕의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성군 아래에 현신이 있게
마련으로 이와 같이 좋은 군신의 만남은 역사상 극히 드문 일로서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위대한 작품이 창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되고 대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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